장쩌민의 파룬궁 탄압과 수련생에 대한 고문, 살해가 전세계적으로 해외까지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한국인 곽병호씨(천안거주)와 결혼하여 한국으로 이주수속을 밟는 도중 체포되어 구류중인 고성녀씨(28세)는 현재 자무쓰 강제노동수용소에서 고문과 박해를 받고있다.
이 소식을 접한 한국 수련생들은 고성녀씨를 구출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전국적인 구원활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다음 주 20일 경 기자회견을 열어, 각 언론사에 진상을 알리며 대국민 서명받기 운동을 실시할 계획이다. 또한 인권단체나 관련 정부기관의 지지와 협조를 얻어 중국정부를 향한 대국민 구명운동으로 확산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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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고성녀씨는 1997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여 왔는데, 2004년 5월 7일 아침 9시 무렵, 동료 수련자인 탕하이윈(湯海雲)과 함께 평소처럼 길을 가다가, 갑자기 나타난 4명의 공안에 의해 강제로 난웨이(南韋) 파출소로 납치되었다. 그곳에서 하루종일 감금되어 있다가 저녁무렵 자무쓰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고성녀씨와 같이 납치된 탕하이윈씨는 감옥을 나왔으나, 고성녀씨는 불법으로 감옥에 계속 남아있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온갖 박해를 받았다.
고성녀씨는 불법으로 재판에 회부되어 강제노동수용소 3년형을 판결받았다. 부친 고용봉(高龍鳳)씨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처지에서 5,000위안이나 되는 돈을 둥펑 공안분국에 바쳤고, 공안국에서는 돈을 받은 후 1년으로 감형하여, 그녀는 지난 6월 초, 자무쓰 노동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녀가 노교소에 입소하자마자 간수들은 강제로 그녀의 수련을 포기시키기 위해 갖은 혹형과 고문을 시도했다. 그녀를 작은 의자에 앉히고 천춘메이(陣春梅), 가오제(高杰) 등 3~4명의 간수가 마구 때려 기절하게 하고는 그녀를 뒤로 족쇄 채워 침대에 묶었다. 그녀가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는데도 장쇼단(张曉丹)이란 간수는 잔혹하게 그녀의 뺨을 구타하여 그녀는 3일간 계속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녀가 단식으로 이 같은 고문행위에 항의하자 간수들은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였다. 그녀의 두 손을 의자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우고는 몇 명이 그녀를 강제로 누르고 쇠주걱으로 무자비하게 입을 열고, 그것도 모자라 손으로 코를 틀어 막고 이빨을 모두 부러뜨려 입안이 완전히 훼손되었음에도 강제로 음식을 집어넣었고 또, 이름 모를 약물도 주입하였다.
지금 고성녀씨는 자무쓰 강제노동수용소에 감금되어 각종 고문에 시달리고 있다.
2. 그동안 중국 내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박해는 계속되어 왔지만 해외에 가족이나 친척이 있는 수련생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전 세계적으로 박해받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구원하기 위한 NGO 조직인 “전 세계 박해받는 파룬궁 수련생 긴급구원위원회(Global Mission To Rescue Persecuted Falun Gong Practitioners)”에서는 해외에 친척이 있는 수련생들을 따로 분류하여 구원활동을 펼쳐 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일랜드 수련생 자오밍(趙明), 일본의 가네꼬 요꼬(金子容子), 미국의 의사이자 시민권자인 이상춘 박사 구원활동, 이번에 호주에서 새로 구원된 셰옌(謝焱)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현재까지 해외 구원 대상자를 국가별로 살펴보면 미국이 66명으로 가장 많았고 뒤를 이어 캐나다 29명, 일본 27명, 호주 24명, 홍콩 12명, 대만 11명, 독일 8명, 영국 7명, 네덜란드 7명, 아일랜드 5명, 프랑스 4명, 덴마크 3명, 뉴질랜드 3명 싱가폴 2명 등이고 한국은 고성녀씨가 이번에 처음으로 명단이 올랐다. (http://www.globalrescue.net/unproj/china)
우리의 현재 상황과 유사한 가네꼬 요꼬의 예를 들면, 그녀가 지난 2002년 5월 24일 천안문 광장에 청원하러 가는 도중, 베이징 시내에서 다른 2명의 일본 수련생들과 함께 진상 전단지를 나눠주다가 체포되었다. 다른 동료 두 명은 일본 국적이라 다음 날 바로 귀국조치 되었으나 중국 국적이던 가네꼬 여사는 중국 공안당국에의해 불법으로 감금되어 나중에 강제로 1년 6개월 간 강제노동수용소 생활을 해야 했다.
한편, 일본 수련생들은 사건 발생 직후부터 정체적으로 협조하여 도꾜에 “가네꼬 구원위원회”를 설립하고 오사카에 시민지원 인터넷 서명 구원위원회를 설립하였으며 일본 각지 및 국제적으로 인터넷 서명운동을 펼쳤다. 또한 이 사실을 바로 각 언론 매체에 알리고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가졌으며, 대 국민 서명운동, 가네꼬 여사 구원을 위한 퍼레이드 등을 벌이기도 했고, 가네꼬 요꼬 및 중국내 박해받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구원하기 위한 SOS 도보 행진도 하였다.
이런 헌신적인 노력들에 힘입어 일본 유수의 언론 및 지방의회, 국회의원 등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으며 2003년 7월에는 당파를 초월하여 자민, 민주, 자유, 보수당 의원 21명이 가네꼬 구명 의원연맹을 만들기까지 했다. 2003년 11월 가네꼬 여사가 만기 출소할 때까지 일본 전역에서 13만 명이 넘는 구명 서명을 받았으며 각급 의회 의원 270여 명의 지지 편지를 받았다. 이외에도 세계 각국 정부, 인권단체, 개인들로부터 수많은 지지를 받았으며 이런 지지를 바탕으로 일본 정부에 구원을 호소하였다.
이에 보수적인 일본 정부에서도 가네꼬를 구원하기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2003년 10월 가네꼬 여사의 만기를 앞두고 일본 외상 가와구찌(川口)가 직접 나서서 일본 정부는 가네꼬를 일본인과 동등하게 대우할 것임을 표명하여 중국정부에 석방 압력을 가했다. 가와구찌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는) 이 여성이 일본에 거주하고 있고, 일본인과 결혼하였으며 게다가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를 일본인과 똑같게 대하는 전제하에서 노력을 해 왔다.”고 말했다.
결국 일본 수련생들의 단합된 노력과 국민 및 정부의 지지에 힘입어 가네꼬 여사는 2003년 11월 23일 무사히 석방되어 일본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앞으로 펼쳐질 고성녀 씨 구원활동과 관련하여 전국의 모든 수련생들 및 양심적인 인사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