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한 대규모 연공 광경은 당시 중국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SOH] 1999년 7월 20일은 중공(중국공산당) 전 총서기 장쩌민(江澤民)과 전 정치법률위원회 서기 뤄간(羅幹)이 파룬궁 박해를 개시한 날입니다. 중공은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이후 9년간 일보, 일보 그 자신이 해체되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박해 초기, 불가(佛家)를 수련하는 파룬궁 수련자들은 6.4천안문 사건 이후 중공 독재정권에 등을 돌린 민주인사들과 달리, 중공 정권 자체에 편견을 가지지 않고 그들이 잘못을 고치길 희망했습니다. 그리하여 중공 당국이 전 국가기구와 언론을 동원해 파룬궁을 모함하고 공격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각지 수련자들은 청원을 위해 베이징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체면을 중시하는 중공은 권력의 상징인 천안문광장에서 수련자들이 정권에 반항해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거나 가부좌하는 것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대거 몰려드는 파룬궁 수련자들을 막기 위해 중공 당국은 청원자 단속에 실패한 지방 관리들을 처벌한다는 규정을 세웠습니다.
이 같은 당국의 조치로 감금되거나 사망하는 수련자들이 급증했으며 그들은 더 이상 천안문 광장에서 정부에 호소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파룬궁 수련자들은 독재 정권에 호소하던 데로부터 민중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게 됐으며 중공은 더욱 무서운 상황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9평공산당’ 서적이 민간에 널리 전해지면서 민중들이 공산당 조직을 탈퇴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동시에 해외의 파룬궁 수련자들은 박해에 참여한 관리와 경찰들의 자료를 체계적으로 모으기 시작했고 그들을 처벌할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이를 위해 성립된 ‘추적국제조사조직’은 중공의 박해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한 뒤 각국 법정에서 중공 관리들을 고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미 장쩌민, 뤄간(羅幹), 저우융캉(周永康) 등 고위관리들과 관련된 50여 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며 그 중 장쩌민과 관련된 소송만 20여 건입니다. 또 4건은 피고가 결석한 가운데 재판이 이뤄져 이미 유죄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강대해 보이는 중공이지만 파룬궁을 박해한 9년 동안, 줄곧 피동적인 자세를 개변하지 못했습니다. 박해를 시작할 때, 중공 당국은 거의 2개월 동안 매일 24시간 CCTV를 통해 파룬궁을 모함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지만 그 후로는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에 빠졌습니다. 중공이 제거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지금까지 어떠한 개인이나 단체도 3일을 넘기지 못하고 굴복했기 때문입니다.
2년간의 고민을 거쳐 2001년 말, 장쩌민은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 조작 뉴스를 만들어내 또 다시 파룬궁 비난 여론을 고조시키는데 성공하고, 이에 힘입어 그 후 1년 동안 언론의 흥분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는 또 다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모두 수련자가 아닌 당국이 매수한 인물로 드러났다고 유엔 교육개발기구가 밝혔다.(명혜망)
파룬궁이 4, 5년이 지나도록 굴복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려운 중공은 2004년부터는 공개적으로 박해하지 못했으며 언론에도 아예 파룬궁 소식을 싣지 않았습니다. 중공 당국에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굴복하지 않는 파룬궁을 보고 정부를 우습게 보지 않을까 우려해서였습니다.
현재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중공 당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사실 티베트 승려들도, 신장 무슬림도 아닌 파룬궁 수련자들입니다. 중공이 현재 10만 대군과 미사일, 50만 위안의 상금을 걸고 명확하게 밝힌 위협 단체는 고작 파룬궁 하나입니다.

올해 7.20 기념활동에서 각국 파룬궁 수련자들은 ‘중공을 해체하여 파룬궁에 대한 9년 박해를 종식시키자’라는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이는 신(神)과 함께 하는 파룬궁수련자들이 무신론 중공에 내린 사망 선고입니다.
9년 동안, 생체 장기적출을 포함한 인류역사상 유례없는 잔혹한 박해로 이미 수천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신념을 지키기 위해 희생됐고 노동교양소, 감옥과 정신병원에서 학대받고 있는 수련자들의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감옥에서 연속 7시간의 전기 쇼크를 받아 얼굴이 심하게 훼손됐으며 결국 사망했다.(FDI)

그러나 지금까지 각국 정부는 중공의 파룬궁 박해가 인간성을 상실한 죄악임을 뻔히 알면서도 경제적인 이익 때문에 제지에 나서지 않았으며 심지어 중공을 도와 죄악을 숨겨주었습니다.
중공 당국은 현재 정권붕괴를 막기 위해 마지막 쇼인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지만, 화려한 쇼가 막을 내리면 중공의 편에 섰던 사람들은 모두 중공과 함께 역사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입니다.

中共은 왜 파룬궁을 탄압했을까?
파룬궁이 처음 중국에서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2년입니다. 당시 중공 당국은 파룬궁이 신체건강 유지와 사회도덕 회복에 놀라운 효과가 있다며 파룬궁을 직접 표창하고 언론을 통해 홍보까지 해줬습니다. 1998년 공안부 내부조사에 따르면 불과 몇 년 사이에 파룬궁 수련자수는 이미 7천만에서 1억에 달해 중공 당원수를 능가했으며 수련자들 중에는 중공 고위관리와 사회 각 계층의 엘리트들도 많았습니다.
파룬궁의 ‘진선인(眞ㆍ善ㆍ忍)’ 가치관은 중공이 선양하는 계급투쟁, 폭력혁명 이념과 본질적인 구별이 있었습니다. 중국 전통문화와 도덕적 부흥을 불러온 파룬궁은 서방에서 온, 이물질과도 같은 공산주의 학설과 큰 대비를 이뤘습니다. 파룬궁이 정치적 주장이 일절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중공 우두머리 장쩌민과 그의 추종자들은 파룬궁에게 극도의 공포심과 질투심을 느꼈으며 이렇게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을 용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수중의 권력을 이용해 1999년 7월 20일, 1억 민중을 대상으로 역사적으로 보기 드문 대규모 불법 탄압을 시작했습니다.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이원욱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