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2001년 11월 20일 오후, 12개국 서양인 36명이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조용히 나타났다. 그날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들의 모습에 놀랐고, 유례없는 그들의 시위는 곧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들은 대부분 유럽, 호주, 북미에서 왔는데, 단체사진을 찍고 나서 그자리에 조용히 가부좌했다.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위대한 중화인민공화국, 영원하라’라고 적힌 붉은 중국 공산당 기를 앞에 두고 ‘진선인(眞善忍)’이라고 적힌 금색 현수막을 펼쳤다.
이들의 주저없는 행동에 그 자리에 있던 중국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공산당 통치 하의 중국, 그곳에서 톈안먼광장은 드넓은 면적과 반대로 자그마한 표현의 자유도 ‘목숨을 내건’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놀라운 제스처가 있은 후 20초도 안 돼 중국 공안이 요란한 경고음을 울리며 도착하더니 이윽고 공안 차량이 이들 36명을 에워쌌다.

공안들은 휘슬을 불며 광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더니, 관광객을 몰아내고 이들을 찍는 사람들에게서는 강제로 카메라를 빼앗았다.

공안이 시위대의 거대한 깃발을 찢으려고 재빠르게 움직이자, 캐나다 출신 파룬궁 수련자 제논 돌니키(Zenon Dolnyckyj)는 가부좌를 풀며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라고 적힌 작은 깃발을 펼쳐 들었다.

돌니키 씨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알고 있습니다. 파룬궁은 좋습니다!”라고 중국어로 소리치면서 깃발이 잘 보이게 세워놓고 톈안먼 광장을 질주했다.

파룬따파(‘파룬궁’이라고도 함)는 진(眞)ㆍ선(善)ㆍ인(忍)에 기초한 중국 전통 심신수련법이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99년 기준 중국 내 파룬궁 수련자 숫자는 7000만 명에서 1억 명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중국 주석 장쩌민은 이들이 파룬궁을 수련해 심신에 많은 수혜를 입은 점을 무시한 채, 상무위원 전원의 반대에도 파룬궁에 잔혹한 박해를 가하기 시작했다. 1999년 7월 20일이었다.

공안 3명은 제논을 땅바닥에 메어치고 얼굴을 가격해 코뼈를 부러뜨렸다. 돌니키 씨는 또 “프랑스에서 온 여성 시위자는 목이 졸려 질식할 뻔했다”고 진술했다. 호주에서 온 한 남성 시위자는 돌니키 씨보다 더 심각하게 구타당해 팔이 골절됐다.

공안들은 이들 평화로운 시위자들을 한 명씩 끌고 가 호송 차량에 내동댕이쳤다.

당시는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을 탄압하기 위해 전 중국 매체를 통해 날조 선전을 퍼붓던 때였고, 이 때문에 파룬궁에 관한 잘못된 정보가 전 세계를 뒤덮은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 서양인 파룬궁 수련자들은 톈안먼 광장에 모였다. 이들의 생각이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아래는 그들의 이야기이다.
제논 돌니키(캐나다, 피트니스 코치)

“3년 반 파룬궁을 수련한 결과, 저는 파룬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수련을 통해 흡연, 음주, 약물 중독뿐 아니라 제 심신을 망쳐온 나쁜 습관을 모두 극복할 수 있었어요 …… 가슴 깊은 데서 파룬따파에 대한 숭고한 존경의 마음이 우러나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실을 지지하기 위해 중국에 왔답니다. …… 더는 거짓 선동을 믿지 말기 바랍니다.”
헬렌 통(프랑스, 테이스트 오브 라이프 매거진 세일즈매니저)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 수련에 대한 극단적 ‘비난 운동’을 펼치면서 일반 중국인들은 ‘중국 외 국가에는 파룬궁 수련자가 없다’는 허위 정보를 믿고 있었다. 이에 대해 헬렌 통 씨는 아래와 같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우리의 시위는 중국인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인들이 파룬궁을 ‘사이비 종교’로 오판하도록 기만해왔습니다. 매우 부당해요. 저는 중국 시민들께 눈을 뜨고 보실 것을 간곡히 권합니다. 우리는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온 백인들인데,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어요. 이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릴리안 스타프(스웨덴, 그래픽 디자이너)

“파룬궁 박해가 시작된 후로, 50만 명 이상 수련자가 불법적으로 구금됐고, 그중 1만 명 이상이 재판도 없이 강제로 노교소에 끌려갔습니다. 노교소에서는 파룬궁 수련자들의 신앙심을 꺾기 위한 강간과 고문이 만연해 있습니다. 고문으로 사망한 파룬궁 수련자 숫자가 많아요. 이러한 잔죽음을 맞이한 파룬궁 수련자들의 숫자도 많습니다. 이러한 잔학무도한 행위를 알려야만 비극을 멈출 수 있을 것입니다.”
화가, 카이 루바첵(호주)

“저는 파룬궁을 수련한 뒤로 건강 상의 문제가 해결됐을 뿐 아니라, 가족과 친지들과 사이가 더 좋아졌습니다. 정신적으로 한 단계 성숙하게 됐어요. 때문에 현재 중국 공산당처럼 파룬궁 수련을 금지하는 세력에 절대 동조할 생각이 없습니다. 나아가 중국 내 파룬궁 수련자들이 왜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지, 그리고 자신의 안위를 뒤로 하고 거리에 나와 진실을 알리는 것인지를 절실히 이해하게 됐습니다.”
모니카 바이스(독일, 前 영화 에디터)

“저는 수년간 영화 에디터로 일하면서 유대인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많았는데요, 당시 그분들은 나치 정권에 관해 자주 언급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국가가 언론을 통해 여론을 조작하는 방법, 나아가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눈과 귀를 어떻게 막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체포 후 시위대는 무슨 일을 겪었을까?
이들 서양인 36명은 톈안먼 광장 경찰서에 있는 좁은 감방에 끌려갔다. 그 속에서 이들은 외국인 투자자나 관광객이 알 수 없는 중국 공산당의 이면을 직접 맞닥뜨렸다.

당시 호주에서 온 케이트 베레사카 씨는 “(끌려가면서) 감방 벽면을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거기에서 누군가 손으로 긁은 듯한 손자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핏자국 같은 것들이 있었어요”라고 증언했다.

이스라엘에서 온 파룬궁 수련자 이샤 레미쉬 씨도 공안에 구금된 뒤, 좁은 방에서 구타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공안은 이렇게 이들을 구타한 뒤에는 시위자들을 호텔처럼 보이는 곳으로 끌고 가 음식과 물을 제공하면서 그 장면을 영상으로 촬영했다. 공안은 이런 식으로 인도주의적 조치를 취한 듯한 위장 자료를 제작했다. 그리고 그곳은 호텔이 아니었다.
“그곳은 호텔처럼 보이는 곳이었을 뿐, 사실 공안의 보안시설이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움직임이 감시되고 있었고 곳곳에 공안이 배치됐습니다.” 미국에서 온 사업가 애덤 레이닝 씨는 이렇게 당시를 회상했다.


공안들은 이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어로 된 진술서를 들이밀면서 서명을 강요했다.
서명을 거부하자 공안들은 일부 시위자의 안면을 강타하거나 발로 복부를 걷어찼다.


그러나 파룬궁 박해는 법률적 근거가 없는 장쩌민 정권의 불법적인 탄압이었고, 중국 공산당은 이번 시위자들에 대한 잔학 행위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것을 우려해, 24~48시간 구금 후 시위대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외국 여권이 없는 대다수 중국 자국민 파룬궁 수련자들은 훨씬 더 심각한 탄압을 받았다.

파룬따파정보센터(Falun Dafa Information Center)에 따르면, 2001년 11월 기준 중국 내 파룬궁 수련자 300명 이상이 고문으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은 파룬궁 수련자 수천 명 이상의 장기를 산채로 강제 적출해 고수익 장기 이식 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돌니키 씨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피박해자들의 소식을 전하는 밍후이(Minghui) 정보센터와 인터뷰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은 사회 계층이나 단체를 초월한 수승한 것입니다. 이 점 때문에 당시 중국 공산당 주석 장쩌민이 두려워했을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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